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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시청하다 보면 유독 두 회사의 새로운 광고와 수시로 마주치게 된다. 게다가 그 메시지가 참 흥미로우면서도 궁금하다. 바로 이동통신업체 LG텔레콤과 SK텔레콤이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광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 광고는 다채로운 내용이 이어지는 연작 광고 중 하나일 뿐이다. LGT와 SKT는 마치 작심한 듯 광고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다. 피튀기는 가입자 쟁탈전을 벌여 온 이동통신업계의 광고전쟁은 사실 어제온르 일이 아니지만, 최근 형성된 전선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향후 이동통신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는 메가톤급 서비스의 주도권을 누가 먼저 가져오느냐 하는 전초전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광고로 맞불을 놓고 있는 신규 서비스는 이른바 풀브라우징이다. 풀브라우징은 PC나 노트북과 똑같은 인터넷 사용환경을 휴대폰에서도 구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다시 말해 휴대폰 화면에 인터넷 웹사이트를 그대로 띄우는 것은 물론 그 안에서 서핑, 검색, 이메일 등 다양한 인터넷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디ㅏ. 앞서 예로 든 LGT와 SKT의 광고는 풀브라우징의 개념을 아주 분명하게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국내 인터넷 사용 인구는 전체 국민의 90%에 달하고 이동통신 가입자는 4,000만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정보기술 강국의 명성에 걸맞게 거의 대다수 국민이 인터넷과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풀브라우징의 잠재력과 파괴력은 바로 이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세상과접속하기를 원하는 오늘날 디지털 노마드에게 너무나 매혹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휴대폰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 기술은 이미 수 년 전에 상용화됐다. 국내 이동통신 3사도 네이트, 매지앤, 이지아이등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벌써부터 제공해 왔다. 그러나 기존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PC나 노트북을 통한 유선인터넷 사용 환경에 비할 바가 못됐다. 각 이동통신사가 폐쇄적으로 구축한 인터넷 망을 사용하는 까닭에 자유로운 웹서핑이 거의 불가능한데다, 필요한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도 너무 불편했다. 더 큰 문제는 비싼 사용 요금이다. 인터넷 접속시간이 좀 길어지면 입이 딱 벌어질 요금고지서가 날아오기 십상이다. 이러다 보니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무선인터넷을 통해 고작 음악이나 사진, 벨소리 등을 내려 받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풀브라우징의 등장은 기존 무선인터넷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뀌 놓고 있다. 다소 섣부른 감은 있지만 풀브라우지이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시장을 압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적 발명품이나 서비스)'으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유럽, 일본 등 통신서비스 선진국에서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풀브라우징 서비스를 출시해 상당한 호응을 얻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독일 최대 이동통신사인 T-Mobile의 경우 2005년 웹엔워크라는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가입자당 데이터 매출이 2배 이상 급증하는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LG삼성경제연구원 한승진 연구원은 '풀브라우징, 통신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풀브라우지이 이동통신 서비스의 새로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이 일상생활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잡았고, 이동통신사들이 포화상태의 시장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무선인터넷 확산에 나서고 있으며, 이동통신 네트워크와 휴대폰의 빠른 기술적 진화도 충분히 뒷받침된다는 것을 세가지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도 풀브라우징이 선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지난 4월 풀브라우지의 포문을 연 LGT의 오즈 서비스가 중요한 시금석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오즈는 모바일 인터넷 대중화 시대를 연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그런 구호에 걸맞게 '열린, 편리한, 부담 없느 모바일 인터넷'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실제 오즈서비스를 이요하면 휴대폰 버튼 하나로 인터넷에 접속해 웹서핑은 물론 방대한 양의 무료 콘텐츠를 즐기고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올 하반기에는 실시간 메신저 서비스도 추가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척 저렴한 사용요금 또한 매력적이다. 오즈 무한자유 프로모션 요금제는 월정액 6000원으로 1GB까지 이용할 수 있다. 기존 무선인터넷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LGT는 프로모션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대다수 고객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저렴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한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은 LGT가 오즈 서비스를 내높기 전에 실시한 이동통신 가입자 대상 사전 시장조사 결과다. 이에 따르면 상당수 응답자들은 값싸고 편리하며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데이터 서비스를 가장 많이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희망은 오즈 서비스에 대한 열띤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즈는 출시 한 달만에 가입자 10만 명 돌파라는 예상치 못한 호성적을 기록했다. LGT측은 오즈가 이용하기 불편하고 요금도 비싼 기존 무선인터넷의 문제점을 크게 해소함으로써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잠재수요를 끌어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첫 테이프를 끊은 영상통화와 후발주자인 풀브라우징의 대결구도 역시 상당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KTF가 쇼브랜드로 바람몰이에 성공한 영상통화 서비스는 2007년 이동통신업계의 초대 화두였다. 물론 이동통신 가입자들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꿈의 서비스를 크게 반겼다. 실제 쇼는 출시 4개월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점차 가속도를 붙인 끝에 지난 4월 출시 14개월만에 가입자 500만 명을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 숫자로는 이동통신 3사 가운데 1등이다. KTF에 따르면 쇼 가입자 증가화 함께 영상통화의 월별 이용자 숫자도 매월 전월 대비 20-30% 정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KTF가 지난해 10월 19-39세의쇼 영상통화 이용 고객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중 88%가 서비스를 계속 이요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가운데 52%는 적극적으로 영상전화 서비스를 추천하겠다고 응답했다.
주간한국 2008.5.27. 2224호.
무언가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한 나날들에 대한 누군가 사랑하고 싶었으나 사랑하지 못한 나날들에 대한 어딘가 떠나고 싶었으나 떠나지 못한 나날들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삭제하고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는 곳에서 미친년처럼 웃을 수 있는 자유
꽃을 피워라, 심장
초콜릿처럼 달콤한 밀어를 속삭인다 한들 그래, 차가운 변기 위에 앉는 건 혼자뿐이다.
이데아적 사랑 이 사랑의 실존적인 상호주관성은 짝사람보다는 주로 영원히 사랑하고픈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일그러지기 쉽다. 이 욕망은 아마도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흘러나올 듯하다. 사랑이 죽음을 연기시키는 실존적 의미라면,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영원한 사랑을 좇아야만 하겠기에, 그렇기 때문에 'endless love'는 인간적인 삶의 영원한 테마이다. 여기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종교에 귀의하고픈 의지가 사랑의 행위에 침투해 들어 올 수 있다. 현실 속에 엔들리스 러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함이란 모든 존재들의 이데아가 가질 수 있는 속성일 뿐, 지금 여기에 실존하는 존재들(현존재)의 속성은 아니다. 그들이 펼치는 사랑도 이데아적일 수가 없다. 그런 사랑은 기독교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기독교는 이데아적인 사랑을 좇는다.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렇고, 인가의 신에 대한 사랑이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그런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곧 영원한 삶,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깊은 실연의 아픔에 빠진 사람이 갑자기 천주교나 기독교에 귀의하거나, 심지어는 가던 길을 아예 바꿔 성직자의 길을 가는 것도 인간과의 덧없는 사랑을 신과의 사랑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고자 하는 대체의지가 작용했기 떄문일 수도 있다. 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닌 김성탁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순수한 열정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자기의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연의 아픔은 남달랐다. 여자로부터 분명하게 애저의 절교를 선언 받은 후 그는 10여일을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없이 토하고 몇날 며칠을 하루종일 울었다. 친구들이 많이 염려했고 위로했다. 그러나 그런 염려와 위로가 그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지극히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었다. 실연의 아픔 끝에 그는 하느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후 성서를 들고 강의실에 나타났고 그의 신앙심은 점점 더 표현적이 되어 갔다. 이를테면 교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때도 그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단복처럼 하얀 바탕색에 빨간색의 십자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그런데 더욱 친구들을 놀라게 한 점은 그가 왼손에 검은색 피복으로 덮여진 성경을 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친구들은 아마도 이런 합리적 물음을 속으로 던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마라톤에 왠 성경? 다른 애들은 완주니, 기록이니하는 목표를 향해 두텁고 투박한 옛날 손목시계마저 벗어던지며 요란스레 달리기의 합리성을 맹렬히 추구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무거운 성경을 마치 십자가를 짊어지듯 손에 들고 뛰겠다니? 그런 고난의 길에 성스러움이 있는 걸까?
사랑 - 실존적 의미의 상호적 공유
죽음을 연기시키는 사랑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람살이에서 사랑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사랑 없는 삶은 얼마나 황량할까? 누구를 사랑하지는 못해도, 사랑하고픈 마음마저 품고 살 수 없다면, 그 고독은 키에르케고르의 살존철학적 통찰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고 말 게다. 그러니 살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함으로써 살아 있게 된다. 사랑이 다하면, 우리의 삶도 다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죽음을 연기시키는 인간적 실존의 의미가 될 법하다. 그래서 시인 김춘수도 이렇게 노래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사랑의 이 실족적 의미는 과학적인 명제로 거듭나기도 한다. 노년이 될수록 적당한 섹스를 한 사람이 오래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과학적 명제는 섹스가 생체적 메커니즘에 주는 의학적 효과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랑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느낄 때 사람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해지고, 삶의 에너지도 증가될 법하다.
에로틱한 흡혈귀 사랑 말고, 생명을 상징하는 또 다른 상징기호로 피가 있다. 피는 일상적으로 생명의 매체로 인식된다. 환자를 수술할 때에도 피를 체내에 공급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연장할 수 있고, 또 피를 잘못 공급하거나, 썩거나 감염된 피를 공급함으로써 환자의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는 그런 과학적인 생명의 현상을 넘어 종교적인 차원의 상징도 갖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이나 닭의 깨끗한 피가 신을 영접하는 제사의식의 소재로 사용된 점은 피가 그처럼 생명을 주고받는 신성성의 상징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피는 사랑이 죽음을 연기하고 생명을 연장한다는 상징구조에 개입하여 새로운 상징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서양문화에서 드라큐라 백작이나 뱀파이어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이야기는 <사랑-피-삶과 죽음>이라는 상징구조를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불가리아 트랜실베니아의 드라큐라 백작이 전설적인 피의 제왕으로 등극한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그가 십자군에 출병한 사이에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죽음을 당하자 그 실연의 몸부림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다는 것이다. 또한 뱀파이어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수백 년을 넘게 생명을 연장하는 몬스터로서 세계각지에서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다. 두 캐릭터의 결합은 살아과 피, 그리고 생명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즉, 드라큐라 백작처럼 사랑이 피를 불렀고, 뱀파이어처럼 피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로써 생명을 얻는 뱀파이어의 흡혈행위는 사랑의 행위와 그 이미지가 중첩될 수 있다. 뱀파이어는 언제나 목덜미를 송곳니로 깨물어 피를 빤다. 그런 흡혈행위의 자세는 남자가 키스를 하고 여자가 목을 빠는 애무의 자세이기도 하다. 그런 애무에 의해 점점 무아지경으로 도취되어 가는 여자에게는, 날카로운 송곳니의 깨물음도 그녀의 성감을 높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동시에 그 행위는 키스와 애무를 하다 스스로 색에 겨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깨물고 마는 남자의 색정일 수 있다. 여기다가 뱀파이어가 만일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콤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처럼 여성들이 보기만 해도 자지러지느 마스크를 하고 있다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한번쯤은 뱀파이어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할 것만 같다. 이렇게 사랑과 피 그리고 생명의 상징적 통합은 사랑이 죽음을 연기하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상징을 더욱 강도 높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통합에는 목덜미를 빨고, 빨다 못해 아예 깨무는 자가 생명을 얻어가는 과정과 황홀 속에서 빨림을 당하는 자가 죽어가는 과정이 피라고 하는 원초적인 생명의 상징을 매개로 하여 서로 맞바뀌는 긴장이 전개되고, 이 생사를 바꾸는 긴장은 사랑이 삶을 연장하고 죽음을 연기하는 상징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숙명적 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피를 부르고 그 피를 통해 극적으로 고조되는 열망은 삶을 얻고 죽음을 미루는 곳으로 향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큐라 백작과 뱀파이어의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것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나름대로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하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갈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인간적 실존의 근원적인 상징들이 그 이야기 속에서 에로틱하면서도 종교적이기까지 한 묘한 통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짝사랑의 상호주관성 이렇듯 사랑은 생과 사를 가르는 행위를 상징한다. 사랑을 얻는 것은 곧 삶의 의미를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존의 의미는 언제나 상호적일 때만 가능할 수 있다. 앞서 김춘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내가 누구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동시에 그 누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될 때, 사랑은 비로소 실존의 의미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는 드라큐라 백작과 뱀파이어의 상징구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뱀파이어와 그에게 피를 빨리는 자가 에로스의 짝으로 설정도지 않는다면, 뱀파이어는 그냥 무시무시한 괴물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야기만 해줘도 아이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 그런 인간외적 존재가 되고, 그 존재가 흡혈로써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살ㅇ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된다. 흡혈귀라는 주체가 인간을 객체화하거나 인간이란 주체가 흡혈귀를 인간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시키게 된다. 흡혈행위는 뱀파이어와 그 피해자가 서로 사랑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에만 인간적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애당초 상대의 사랑을 동시적으로 전제할 때에만 가능한 개념이 된다. 즉, 사랑의 개념에는 ;상호주관성'의 이념이 너무도 철저하게 각인되어 있다. 짝사랑도 물론 여기서 예외가 아닌다. 짝사랑은 영원히 오직 나로부터 너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애정의 흐름이 아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가 될 가능성, 서로 애정을 주고받을 가능성에 대한 일방적인 열망이다. 그런 사랑의 열망이 짝짓기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 사랑 자체가 짝 없는 애정은 아닌 것이다.
한국도로공사의 광고공모전이 8회를 맞이했군요. 8년째 진행해 오는데, 가장 먼저 도전자들이 체크해야 할 부분은 기존 대회 수상작들을 감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모전 홈페이지 중 역대수상작 코너에는 이전 대회의 수상작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씩 감상한 후 공모전 수준을 평하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도출하면 유리할 것입니다. 일단 한국도로공사가 공익적인 측면, 캠페인적인 측면, 특정상품이 아니라 이미지중심의 광고들이 기획되고 이를 대학생들의 상상력을 통해 광고로 제작돼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이 좋은 성과를 얻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즉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 길이란 주제로 이어지도록 하는 작품,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도로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대학생다운 정말 기발하고 참신한 생각에 출발하면 좋은 성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참가대상
전국 대학생(휴학생 포함) 및 대학원생(박사과정 제외)
응모과제
한국도로공사 기업 PR광고
*응모자 제출 광고안에 대한 주안점 - 우리공사 CI에 대한 차별화된 홍보아이디어 - 고속도로하면 도공을 떠올릴 수 있는 홍보아이디어 - 고속도로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편익에 대한 홍보 - 단편 광고에 한함 (시리즈 광고 불가)
응모방법 및 절차
- 응모방법 : 인터넷으로 공모참가 신청후 TV광고, 신문 및 잡지 부문. 우편제출(장문접수 받지않음) 라디오광고, 인터넷배너 부문. 인터넷으로 파일제출 *우편제출의 경우 '참가신청서' 출력 후 반드시 점선으로 된 접수증을 잘라 작품 뒷면 우측상단에 부착후 참가신청서는 같이 동봉
- 응모절차 1. TV, 라디오, 신문 및 잡지, 인터넷 배너 광고 제작 2. 인터넷을 통해 참가신청서 작성 3. 작품 뒷면에 접수증 부착, 참가신청서 동봉 4. 우편 또는 인터넷을 통해 작품 제출 5. 인터넷을 통한 작품제출 확인
응모부문 및 출품 규격
- TV광고(우편제출) 우리공사 소정양식인 스토리보드(PDF파일)을 다운로드하여 10컷 내외(칼라, 흑백)로 작성한 후 작품 뒷면 우측상단에 접수증을 부착하고 참가신청서를 동봉하여 제출 반드시 우드락 부착없이 제출
- 신문 및 잡지 광고(우편제출) 컬러 또는 흑백의 교정지를 작품규격보다 사방 2cm씩 큰 흑색 우드락에 임시고정용 스프레이 접착제를 사용하여 부착 광고 규격 (가로,세로) : 신문광고. 5단 37cm(16.9cm, 37cm) 잡지광고. 5,7배판(21cm, 29.7cm) 작품 뒷면에 우측 상단에 접수증을 부착하고 참가신청서를 동봉하여 제출
욕망은 행복을 낯설게 한다.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만 같다. 우선 누구나 아름답다고 칭송할 몸을 가졌으면 하고 바란다. 어떤 여자라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클레오파트라처럼 비록 역사를 바꿀 정도는 아니어도 자기 몸의 아름다움 앞에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무릎 꿇고 자신을 공주처럼 받들어 모신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편하고 행복할까? 남자들 역시 장동건처럼 모습만 조금 내비쳐줘도 여자애들이 비명을 지르고마는 그런 몸을 가졌으면 하는 꿈을 꾼다. 몸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지배하듯, 부와 명예를 누리는 남자들은 그런 꿈의 우상이 되고 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미고 싶어 한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처럼 그런 꾸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옷일 게다. 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옷이라면, 조금은 덜 예쁜 몸일지라도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몸의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기기라도 하듯 함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뽐내기라도 하듯, 몸을 고혹적인 자태로 드러내는 노출패션은 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심미적 양식이 되어줄 것만 같다. 또 사람들은 아름다운 몸을 그렇게 멋진 옷으로 감싼채 죽어도 좋으리만큰 후회 없는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황홀한 키스와 성감의 극치를 경험케 하는 섹스가 일상에 함꼐 한다면, 가진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변강쇠를 욕망하는 대중심리는 바로 그런 섹스주의의 환상에 터 잡고 있다. 여기다가 만일 키스와 섹스를 통하여 외로움이 덜어지고 충만한 기쁜이 더해지는 그런 사랑을 이룰 수만 있다면, 사람은 더욱 더 행복할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랑을 영원하게 만들고픈 갈망 속에서 사람들은 결혼하고 동거도 한다. 그렇지만 열애에 빠진 나머지 열악한 조건의 상대와 결혼하겠다고 떼쓰는 자식에게 우리의 부모들은 '사랑이 밥먹여주는게 아니란다'고 타이른다. 이 타이름은 사랑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인생철학이다. 즉, 사랑은 좀 부족하더라도 누구나 욕망하는 값비싸고 질좋은 물질들을 많이 갖고 사는 것이 사랑은 있지만 가나나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행복에 관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정말 이런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잘생기고, 멋지게 입고, 황홀하게 키스와 섹스를 하고, 그 상대와 결혼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짝짓고, 값비싼 물질을 욕망하는 대로 마음껏 소유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의 조건이 어는 누구에게나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못생겼으며, 그 못난 몸마저 멋지게 연출할 줄도 모르며, 또 가난한 성 속에서 키스와 섹스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며, 재별처럼 살기는 커녕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힘겨운 노동의 나날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또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불행해져만 가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종교는 언제나 커다란 위안이며 유일한 힘이다. 종교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한 것처럼 영혼을 내맡기기만 하면, 불행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행복을 가져다 준다.
종교는 아니지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문화이론도 있다. 대안문화의 흐름이 그것이다. 조각같은 몸매는 망가질지라도 아랫배에 힘주는 호흡을 하면서 많은 시간 명상에 잠기고 삶의 속도를 느리게 하자고 한다. 이 권고에 따른다면 사람들은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며 또 그로 인해 자연히 적게 갖고 적게 쓰게 된다. 바로 그런 삶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문화이론적 처방은 행복의 조건을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노동의 나날에 지친 영혼에게는 쉼터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가르침대로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고, 무소유의 정신을 좇아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개의 보통 사람들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성직자나 스님과 같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또한 대안문화 운동에 공감하면서 느리고 게으른 사람을 흉내도 내본다. 그렇지만 그런 삶에 되돌아오는 것은 가난과 결핍이기 쉽다. 그래서 다시 빠르고 부지런히 남하는 대로 행복의 조건을 좇는 대열에 합류하고 만다. 포스트모던적 행복론을 외치는 책들마처 출판시장의 돈버는 욕망을 지켜가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바로 그런 합류를 희화화한다. 돈버는 데 힘쓰지 말라는 외침으로써 돈버는 역설은 물론 그런 행복론의 저자들이 기획\한 바는 결단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는 그런 저자들도 행복의 조건을 만드는 제도적인 틀의 바깥에서 편히 살도록 그냥 놔두질 않는다. 어떤 행복론도 기존 사회의 대안이 아니라 사회를 형성하는 또다른 한 요소가 될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욕망을 좇는 삶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욕망은 행복해지려는 인간의 본성이 자신을 표현하는 실존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간을 떠나지 않는 한 말이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이란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는 성직자나 득도하신 스님, 아니면 절데의 정신으로 무장된 대안문화운동가나 과격한 생태주의자의 것이 아니다. 세속적인 행복의 조건을 욕망하면서도 그 조건을 변변치 않게 성취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욕망하는 자아를 마음 속에 뿌려진 불행의 씨앗이라고 보거나 심지어 세상의 온갖 악을 낳는 근원으로 간주하는 철학이나 행복록은 욕망에 지친 불행한 사람들에게 위안과 쉼터를 잠시 제공해줄 수는 있으지언정, 진정으로 욕망하면서도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특히 욕망이 넘치는 이 시대를 젊은 시절로 살아가는 신세대들에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욕망하지만 불행한 삶의 세상을 바깥에서 관조하는 철인이나 성직자처럼 단지 욕망의 저편을 가리키거나, 대안문화운동가처럼 욕망하는 자아를 서구적인 근대적 자아의 편협한 개념 속에 가둬두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남과 똑같이 욕망하고 그로 인해 불행을 느끼는 한 사람으로 자리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욕망하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내가 이 책에서 함께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는 점은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들이 행복의 조건을 욕망하는 뭏놔적 양식이다. 몸을 아름답게 가꾸고, 멋진 옷으로 치장하고, 키스와 섹스를 즐기고, 결혼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고, 좋은 물질을 소유하는 욕망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좇는 문화적 양식을 다같이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불행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부분은 우리의 문화적 양식이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협애한 틀로 짜여져 있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서구편향의 아름다움은 인종이 다른 우리 한국 사람을 서구인들에 비해 열등한 몸의 존재로 낮추어놓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교조화하여 까닭없는 사회적 차별을 가져온다. 몸의 아름다움을 치장하는 옷은 서구적인 아름다움에 편향되어 있으면서 다른 한편, 윤리나 집단주의적 에토스에 물든 사회적 관습에 의해 아름다움과 추함이 아닌, 선과 악의 카테고리로 재단된다. 사랑의 실존적 양식이라 할 수 있는 키스와 섹스는 파트너교환섹스(스와핑)가 나타날 만큼 자유화되어 가면서도 여전히 사랑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지독한 소유욕의 노예로 남아있다. 사랑은 오랜 세월동안 종교적, 형이상학적 윤리규범이나 배타적인 소유욕에 감금되어옴으로써, 동거하든 결혼하든 간에 스스로를 부정하고 마는 중병을 앓고 있다. 신세대에 유행하는 동거문화마저도 경제적으로 종속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시장적 가치에 의해 계량화되어, 더 높은 수치의 물질을 향해 올라만 간다. 그로 인해 욕망하는 자아는 욕망의 주인이 아니라 시장이 키워놓은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간다. 운 좋게 물질귀족이 된 소수의 사람들도 소외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그 귀족스런 물질은 자신의 인격이 실현된 노동의 가치가 마련해 준 물질이 아니라 시장메커니즘이 가져다준 부가 마련해 준 물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일그러진 삶의 양식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펼치는 사고의 구심점음 모더니즘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펼치는 행복관을 모더니즘적 행복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행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건강한 자아의 실존양식으로 바라본다. 윤리, 관습, 제도 또는 법과 권력은 그런 양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런 양식을 왜곡시키는 이중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윤리, 관습, 제도, 법과 권력은 그 이데올로기적 기능에서는 해체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실존이 사회적 실존이 되기 위해서, 그러니까 개인들의 고유한 실존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내가 이 책에서 우리의 일상문화를 해체적으로 재구성할 때 지표로 삼는 것은 '인간중심의 문화'이다. 사회의 제도와 문화는 인간봉성에 내재한 다양한 욕망들이 실현되는데 이로운 도구가 되어야지, 오히려 그것들을 억압하는 권력적 장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는 '욕망의 자아'는 서구사회의 근재적 자아, 그러니까 자연을 지배하는 합리적 이성의 주체처럼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홀로 지배 결정하는 주체는 아니다. 자유를 위한 변명이니 뭐니 하면서 욕망이나 쾌락을 끝없이 추구하기만 하는 그런 이기적인 개인주의나 그 변형들, 이를 테면 성적 쾌락주의가 전제하는 자아가 아니다. 그런 자아는 결국엔 자기부정의 나락에 빠지고 말 것이다. 내가 말하는 '욕망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함께 서로 자신의 인간적 실존의 의미를 소통하고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주체이다. 그러니까 욕망하되 서로에 관심을 갖는 자아이다. 근대적 자아의 개념 대신에 '상호주관적 자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자아는 아름다움의 양식, 키스와 섹스라는 사랑의 양식, 결혼제도나 동거문화, 물질적인 삶의 방식들을 제도적 권위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중심으로 결정하되,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형성해나가는 존재이다. 그런 주체들이 펼치는 일상문화의 끊임없는 해체적 재구성은 곧 문화의 변화이며 역사의 발전이다. 그런 변화와 발전 속에서 지금은 불행한 우리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종교나 대안문화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말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죽은 뒤의 행복에 대해선 나 자신도 말할 수 없다. 그건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게다. 이 책은 단지 근대화라는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감으로써 발생하게 된 자본주의적 삶의 관성을 거부할 수 없는 개인들이 바로 그런 역사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같이 생각해보자고 할 뿐이다. '함께''다시' 생각하는 이 행복여행에서 독자들은 낯설은 삶의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부모세대에겐 신세대의 삶뿐만 아니라 내 세대의 삶도 낯설다. 반대로 신세대에겐 나의 부모세대의 삶뿐만 아니라 내 세대의 삶마저도 낯설다. 또 우리 모두에게 서구의 삶의 문화는 아직까지도 많이 낯설다. 아무리 서구의 문물을 1세기가 넘게 맹렬히 수용해왔을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자아를 형성해온 문화적 경험의 틀을 벗어나면 그렇게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새로움'의 범주가 아니라 '낯설음'의 범주로 인식하고, 그 낯선 것들을 배척하고 심지어 단죄하는 경향이 우리에겐 매우 강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개인의 일생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그 무엇, 그러니까 낯설은 그 무엇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토해 자신의 자아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태어나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고 유아원에서 또래 친구들을 사귀고 초등학교에서 좀더 격식과 권위를 갖춘 선생님의 가르침과 만나고 청소년이 되면서 팝문화를 접하거나 거대한 사상과 만나고 대학생이 되면서 장구한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는 의식을 형성하기도 한다. 또한 어른이 된 이후에도 사회적으로도 낯설은 종교에 접해 때로는 그 세계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이 모든 삶의 과정에서 인지가 발달하고 이성이 커간다. 인격의 형성이란 그처럼 새로 경험하는 것의 낯설음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단지 낯선 새로운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그것이 나와 함께 존재함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이를 테면 낯선 종교의 존재를 정하되 동화되지 않은 채, 그 종교를 나의 종교와 함께 이 사회에 존재하도록 놔두는 식의 관용이 아니다. 낯설음의 경험은 낯선 것의 가치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까지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존의 자아나 정체성을 어떤 부분에서는 해체하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부분에서는 끊임없이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런 자기부정의 변증이라는 의미맥락에서 볼때 낯설음은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될 수 있을 뿐이다. 이 낯설음을 수용하는 정신은 이 책과 함께 독자들이 경험하는 낯선 삶의 문화에 대해서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행복찾기의 미덕일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익숙지 않은 생활을 시작할 때는 대개 행복하지 않다. 유학이나 이민을 가도 그 나라에 사회문화적으로 통합되기보다는 동포끼리 인구의 섬을 만들어 모국의 문화와 삶의 방식만은 고집하는 우리 한국 사람의 정서체계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낯설고새로운 경험을 거듭하다 보면 자아가 해체적으로 재구성되고, 그 낯선 경험을 하기 이전의 삶보다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정반대로 더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낯설음의 수용'은 지금보다는 좀더 행복해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정신이며, 삶의 자세이다. 물론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볼 때 낯선 삶의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우리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점은 나 자신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낯설음을 수용하는 정신이 사람들에게 충만할수록, 세대를 달리하거나 국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실존적 소통을 가로막는 문화의 장벽은 눈 녹듯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인간들 사이의 실존적 소통에서 나는 행복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낯선 문화를 수용하는 삶의 태도는 인간적인 문화, 인간이 중심이 된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이 나와 함께 떠나는 이 문화의 여행을 통해 저마다 다르게 경험하는 낯선 것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지금보다 조금이라도더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우리의 삶의 문화를 나와 함께 통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나의 실존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드롣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1. SBS 버라이어티쇼 '라인업'에 등장하는 개그맨 윤정수의 캐릭터는 '투명인간'이다. 그는 방송 도중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행동하지만 동료들은 대놓고 그를 무시한다. 제작진은 머쓱해하는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막을 띄운다. 1992년 데뷔 후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던 그는 '라인업' 출연으로 "존재감 없어 뜨는 연예인"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무한도전에 출연 중인 개그맨 정형돈이나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였던 까다로운 변선생의 개그맨 이조훈 등도 '존재감없는 연예인'의 부류에 속한다.)
#2.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에 나오는 주인공은 매일 '영퀴방(영화퀴즈방)'이라는 인터넷 채팅 공간에서 퀴즈를 푸는게 인생의 낙이다. 부모없이 할머니와 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애인과도 이별한 그는 매일 현실 공간에서 도피, 사이버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간다. 소설 속에서 영퀴방은 주인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공간인 셈이다.
바야흐로 '존재감'이 유행어가 된 세상이다.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존재감'을 입력하면 무수한 게시물이 쏟아진다. "존재감이 없어 고민이에요"라는 고백이나 'OO그룹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멤버'라는 댓글,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다'는 상품 품평은 기본이다. '존재감 없는 버스 정류장''한국 대중음악에서 록이 존재감 없는 이유'등등 아무 단어, 아무 표현에나 존재감을 갖다 붙이는 겨향까지 생기고 있다. '사람,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 국어사전에 기재된 존재감의 정의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실체가 없어 막막하기까지 한 이 말이 2008년 대한민국에 창궐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회 구석구석 침투해 있는 '존재감'의 흔적을 짚었다.
[출처] Weekly Chosun. 최혜원 기자
정보 디자인이란.
사람들이 효율적,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준비하는 기술과 과학이라고 정의된다. 정보 디자인의 주요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이해하기 쉽고, 신속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행동에 옮겨질 수 있는 문서를 개발하는 것
2. 도구와의 상효작용이 쉽고, 자연스러우며 가능한 한 유쾌한 상호작용을 디자인하는 것 이것은 인간과 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3. 사람들이 3차원 공간 - 특히 도시 공간이나 최근 발전된 가상의 공간 - 안에서 편안하고 용이하게 자신들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보 디자인의 필요성
우리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정보를 다루는 데는 세련된 계산방식과 의사전달을 위한 기재 및 네트워크 장비들이 필요한데 이 장비들은 그 효율성과 효과성이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가동된다. 단순히 큰 용량의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검색하는 것만으로는 우리들의 정보에 대한 요구를 해결하지 못한다. 사실, 거대한 정보의 저장고는 너무 많은 정보를 싣고 있으며, 가끔 "가상공간에서 길 잃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길찾기의 문제들로 부담을 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적합한 정보를 적합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다.
뭐든 확실한걸 좋아하지
어영부영
흐지부지
애매한건 딱 질색이거든
헤매고 있구나
넌 이상이 너무 높아서
탈일까
이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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